천공의 섬, 몽생미셸의 밤을 거닐다

입력 2019-04-28 15:11  

여행의 향기

프랑스 몽생미셸·생말로

전설의 해적 요새, 생말로 성벽…중세의 낭만 흐르네



프랑스 북서부는 동화 같은 풍경과 비밀스러운 전설이 숨어 있는 땅이다.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의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는 천공의 섬 몽생미셸이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뾰족하게 솟은 성의 첨탑 끝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신화가 서려 있다. 해안선을 따라 도착한 생말로의 웅장한 성벽에는 중세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고, 대서양의 푸른 파도는 바다 위에 새겨진 해적들의 전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른다.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이 살랑대는 이 계절, 꿈과 낭만이 가득한 몽생미셸과 생말로로 항해를 떠나보자.

천사의 계시를 받들어 성을 짓다

브르타뉴와 노르망디를 가르는 쿠에농(Couesnon)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아름답게 솟아오른 섬 하나가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이 성의 이름은 몽생미셸(Mont Saint-Michel). 면적 0.97㎢, 거주 인구가 5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연간 관광객 30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실상부 프랑스 최고의 명소다. 본래 이 지역은 시시(Scissy)라는 이름의 숲지대였다. 그러나 커다란 해일이 들이닥치고 오랜 시간 지각변동으로 땅이 침식하면서 숲은 사라지고 바위섬만 남았다. 몽생미셸이란 이름은 미셸(미카엘)의 언덕이란 뜻인데, 이에 얽힌 전설이 성의 모습만큼이나 신비롭다.


서기 708년, 이 일대를 다스리던 아브랑슈(Abranches)의 주교 성 오베르의 꿈속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났다. 천사는 그에게 커다란 바위섬 꼭대기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명했지만, 오베르는 이를 단순한 꿈으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이후에도 오베르는 같은 꿈을 꾸었다. 세 번째 꿈속에 또다시 찾아온 미카엘은 손가락을 내밀어 오베르의 이마에 강한 빛을 비춘다. 다음날 꿈에서 깨어난 오베르는 자신의 이마에 실제로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고, 마침내 천사의 계시를 받들어 수도원 공사에 착수한다. 믿기 힘든 전설이지만 아브랑슈 박물관에 구멍 뚫린 오베르 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몽생미셸의 시작은 베네딕투스회 수도사를 위한 작은 예배당이었다. 이후 1000년에 걸친 증축과 개축을 통해 다른 건축물이 더해지고, 섬 밑자락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만큼 몽생미셸은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등 시대별 건축양식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성의 용도 또한 역사를 따라 숱한 변화를 겪었다. 10세기까지는 수도원으로 쓰이다가 백년전쟁이 일어난 14세기에 요새로 변했고,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군의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다시 수도원의 역할을 되찾았고 197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천공의 섬을 만나는 방법

몽생미셸 지역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다. 가장 큰 밀물이 들어오는 대만조 때는 육지가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마치 바다 위에 섬이 떠 있는 형태를 이룬다. 천공의 섬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자태 때문에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몽생미셸에 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무료 셔틀버스 혹은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주차장에서 몽생미셸까지는 약 2.5㎞, 걸어갈 경우 편도 4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지만 프랑스의 목가적 풍경과 점점 거대해지는 몽생미셸을 천천히 음미하기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섬에 당도해 ‘왕의 문’을 지나니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을 메운 코블스톤은 세월에 닳아 반들거리고,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는 프랑스 최고의 오믈렛 가게 ‘라 메르 풀라’를 비롯한 식당과 기념품 숍으로 빼곡하다. 가게마다 달려 있는 각양각색의 입간판은 마치 중세시대의 프랑스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마저 준다.

마을을 지나 좁다란 경사길을 오르면 본격적인 몽생미셸 탐방이 시작된다. 몽생미셸은 크게 3층으로 이뤄져 있다. 맨 아래층에는 근위대의 방이 자리하고 2층은 순례자의 방과 기도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3층에는 수도원 성당과 회랑이 있고, 성 가장 높이 솟아오른 첨탑 위에는 대천사 미카엘의 동상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대부분 사람은 몽생미셸을 당일치기로 방문한다. 그러나 여유가 된다면 이곳에서 하룻밤 묵거나, 적어도 야경을 감상하고 떠날 것을 추천한다. 어둠이 다가오면 몽생미셸은 더욱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적막이 감도는 바다 위, 반짝이는 별 아래 노란 빛으로 물든 성의 자태는 마법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해적의 전설을 찾아서

몽생미셸에서 해안을 따라 약 1시간을 달려 브르타뉴의 휴양도시 생말로(Saint-Malo)에 도착했다. 수백 년간 거친 파도를 막아낸 참나무 방파제가 줄지어 선 바닷가를 걸으며 도시의 첫인상을 천천히 음미한다. 30분쯤 걸었을까, 눈앞에 돛을 펄럭이는 해적선과 생말로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봉쇄된 높고 웅장한 성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말로라는 지명은 브르타뉴로 건너온 웨일스 출신 수도사 생 마클루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해상 탐험과 국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생말로는 16세기 프랑스 왕으로부터 영불해협에서 적국의 배를 약탈할 수 있는 공식 허가를 받으며 해적(코르세르·Corsaire)들의 본거지로 악명을 떨쳤다. 바이킹, 해적을 비롯한 적군의 숱한 침입과 약탈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렸고, 도시는 말 그대로 완벽한 요새의 모습을 이루게 됐다.

생말로를 가장 잘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둘레 약 2㎞의 화강암 성벽 길을 걷는 것이다. 생뱅상 문(Porte Saint-Vincent)을 지나 서쪽 성벽 위로 오른다. 한쪽에는 고풍스러운 중세의 거리가 한 폭의 유화처럼 펼쳐지고, 또 다른 한쪽에는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수채화처럼 퍼진다. 생말로는 밀물과 썰물의 해수면 차가 최대 13m에 이르는, 세계에서 조수간만 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간조가 되면 바닷물에 숨어 있던 해변들이 반짝이며 고개를 내밀고, 외딴 섬들과 육지를 잇는 바닷길이 그려진다.

생말로의 파노라마 전경을 품은 비두안 탑(Tour Bidouane) 위에 서니 생말로 해안 양쪽으로 떠 있는 두 개의 섬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썰물 때만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는 이 섬의 이름은 그랑베(Grand B)와 포트 내셔널(Fort National)이다.

바다 위의 요새라는 별칭을 지닌 포트 내셔널은 해상의 적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전망초소다. 본래 12~14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나 17세기께 프랑스의 군사 엔지니어 보방이 개축해 현재는 생말로의 상징이 됐다. 그랑베 섬은 조금 더 특별하다. 이 작고 아담한 섬 정상에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이 잠들어 있다.

우리는 오직 생말로 사람들

생말로의 성벽을 호위하는 수많은 동상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네덜란드 성채를 지키는 늠름한 동상의 주인공은 생말로 출신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다. 그는 유럽인 최초로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 지역을 탐험한 인물로 프랑스가 캐나다를 통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랑베 섬과 마주한 곳, 대서양을 향해 손짓하는 청동상은 전설적인 사략해적 로베르 쉬르쿠프다. 해적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던 그의 발 밑은 이제 해적도시를 기억하려는 여행객들의 인증샷 명소가 됐다.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지닌 브르타뉴에서도 이곳 사람들의 독립성은 유독 짙다. 실제 생말로는 1950년 독립을 선포하고 4년간 독립공화국의 타이틀을 유지하기도 했다. “우리는 프랑스인도 브레통(브르타뉴인)도 아니다. 우리는 오직 말루앵, 즉 생말로 사람이다(Ni franais, ni breton, malouin suis)”라는 생말로의 모토는 그들의 자부심을 여실히 드러낸다.

성곽에서 내려와 미로처럼 뒤엉킨 구시가지의 골목들을 거닐며 생말로의 속살을 느끼기로 한다. 언제나 굳건할 것만 같은 모습의 생말로지만, 세계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80%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무려 12년간 벽돌 하나하나를 다시 쌓아 올리는 정교한 복원 과정을 거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생뱅상 성당, 구시가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 중 하나인 시인과 작가의 집, 실제 코르세르 해적의 거주지였던 디메르 드 코르세르 등을 거쳐 샤토브리앙 광장으로 돌아온다.

고풍스러운 레스토랑과 카페에선 맛깔스러운 냄새가 흘러나오고 거리의 악사들은 늦은 오후의 흥을 돋운다. 해적 상징물로 꾸며진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선원을 연상하게 하는 푸른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점원이 푸짐한 홍합 스튜를 양손 가득 내온다. 생말로에서 꼭 맛봐야 할 디저트 크레페까지 맛보고 나서야 구시가지 항해를 끝마친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며 하늘을 붉게 적신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낭만의 해변은 지난밤의 꿈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저 멀리 영국에서 건너온 대서양의 파도는 생말로를 향해 거세게 달려오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또다시 고립무원의 섬이 돼 버린 포트 내셔널 요새 뒤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내려앉는다. 해적 도시의 비밀스러운 밤이 시작됐다.

몽생미셸(프랑스)=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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